Page 19 - Thursday Column
P. 19
“I Am Malala”를 읽었느냐고 물었다. 어이없어 하며 꾸며낸 이야기라고 잘라 말했다.
나도 혼란스러웠다.
몇 주후 “I Am Malala”를 읽게 되었는데, 같은 파키스탄 사람이라도 부족이
다르고 사는 지역이 다르면,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되었다. Malala 는 파키스탄 북서쪽
Swat 지역에 사는 Pashtun 부족에 속한다. 이 부족은 아프카니스탄과 Swat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다. 탈리반이 Swat 지역을 장악한후 비도덕적인 만행을 저지르고, 테러를
자행하며 폭행을 가하고 무고한 주민들을 학살했다. 모든 문화 행사를 폐하며, 학교를
파괴하고, 특히 여성교육을 반대하여 여성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그 당시 초등학교 학생이던 Malala 는 BBC 웹사이트를 통하여 탈리반의 만행을
고발했다. 학교 교장인 부친과 함께 여성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여성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국내외 지도자들에게 도움을 호소했다. 탈리반은 그녀에게 폭력과 죽음으로
위협했으나 두려워하지도 좌절하지 않았다.
Malala 의 멘토는 부친이었는데, 부친은 나치 시대에 살았던 Martin Miemoller 의
“Speak Up 고발하라” 는 시를 좋아했다.
First they came for the Communists,
and I didn’t speak out because I wasn’t a Communist.
Then they came for the Socialist,
and I didn’t speak out because I wasn’t a Socialist.
Then they came for the Trade Unionists,
and I didn’t speak out because I wasn’t a Unionist.
Then they came for the Jews,
and I didn’t speak out because I wasn’t a Jew.
Then they came for the Catholics,
and I didn’t speak out because I wasn’t a Catholic.
Then they came for me,
and there was no one left to speak for me.
침묵하면 아무런 변화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부친과 함께 불의에
저항하며 여성교육의 필요성과 교육환경 개선을 호소했다.
탈리반은 2012 년 10 월 9 일 버스 안에서 Malala 에게 총격을 가했다. 그녀는
머리에 총상을 입고 Birmingham(영국)으로 후송되어 수술을 받은후 살아났다. 재활과정을
거쳐 건강을 회복하고 학업을 계속하며 제 2 의 인생을 살고 있다.
“I Am Malala”는 2013 년에 출간되었으며, 다음해 노벨상 위원회는 그녀에게
평화상을 수여했는데, 수상자로는 가장 연소한 나이였다. 수상 연설에서 “One child,
one teacher, one book, and one pen, can change the world.”를 말하며 누구나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Malala Fund”를 설립하여 여성교육 향상과
여성 권리신장을 위해 일하고 있다. 두려움이 없을 때 변화를 위해 일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