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Thursday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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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교회 중고등학생들의 Confirmation (견신례) 시간에 켄을 초청하여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내가 켄에게 인생에서 가장 힘든 때가 언제 였느냐?고 물었다. 켄은
눈물을 글썽이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50 년 전 부인이 정신병에 걸렸을 때 너무
힘들었다. 그때는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때라 정신질환자에 대한 좋은 치료방법이나 약이
없었다. 전기충격 치료를 했는데 환자에게 매우 고통스러웠다.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가족 중에 정신병 환자가 있어도 직장생활을 하기가 힘든 때였다. 낮에
직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아내와 딸 셋을 돌보는 일이 어려웠는데, 어려운 때를 잘 견디고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까지 살고있다.” 고 했다.
켄은 부인(81)을 차에 태우고 주일 예배에 참석했다. 예배가 끝나면 오늘 설교가
좋았다는 인사를 잊지않았다. 그는 청력에 장애가 있어 내 설교를 얼마나 알아 듣는지
가늠할 수는 없었다.
한 2 년이 지날 때 리하이 (펜실바니아 주)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켄이 심장
발작으로 응급실에 들어 왔다는 것이다. 1 시간 후 병원에 도착하여 알게 된 것은 켄이
조금 전 숨을 거둔 것이다. 켄의 갑작스런 죽음이 안타깝고 슬펐다. 참 고마운
분이었는데......
허전한 마음으로 차를 운전하고 집으로 오는데 뒤에서 경찰차가 따라와 내차를 세웠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교통경찰은 신분증을 보자고 하며 “이 길이 고속도로라
위험한데 당신이 지그잭으로 한참을 운전을 했다. 혹시 술을 마셨느냐?”고 물었다.
“술을 마신 것이 아니다. 나는 퀘이커타운 교회 목사인데, 사랑하는 교우가 리하이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 갔는데 이미 운명하셔서 마지막 임종 순간을 보지
못하여 너무 허전하고 슬펐다. 정신이 혼미해서 운전을 그렇게 했는가 보다. 미안하다.
조심하겠다 “고 했다. 경찰이 나의 말을 들은 후“티켙은 안 주겠는데 운전을 조심하라.
길 옆에 차를 세우고 쉬었다 가라,” 고 했다.
눈이 오는 날에는 퀘이커
타운의 추억이 회상된다. 켄
마이어의 신실, 관용, 사랑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