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0 - Thursday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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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Charles 는 그 밤에

                       감옥을 빠져 나와 가족들과 함께

                       파리를 탈출하고, 그 다음날

                       Sydney Carton 은 두건을 쓴채

                       가두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어준

                       Sydney Carton 은 원래 훌륭한

                       인격자나 의인이 아니었다. 한때

                       경쟁력있는  변호사였으나,

                       나태하고 방황하며 술주정뱅이로

                       무질서하게 살았다. 좋아하는

처녀(Lucie Manette)도 동료인 Charles Darnay 에게 빼앗긴 후 삶의 흥미도 잃었다.

그러한 인격 파탄자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었던 계기는 부친 무덤의

묘비에 씌여진 부활에 관한 말씀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saith the Lord: he that believeth in me, though he

were dead, yet shall live: and whosoever liveth and believeth in me, shall never

die. ” (요한 11: 25)

Sydney Carton 은 세느 강변을 걸으며 자신의 무능함을 슬퍼했다. 혁명의

구호아래 행해지는 인간의 만행과 죄악에 환멸을 느꼈다. 강을 따라 유유히 흘러가는

물소리를 들을 때 모든 것이 공허해졌다. 묘비의 말씀이 다시 떠 올랐다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그는 절망감 속에서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께 자비를 구했다. 부활 신앙으로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았다. 그러나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는 말씀처럼 친구의

삶을 통해서 그의 이름이 살아 남았다.

지난주 아프리카 케냐 대학에서 149 명의 학생들이 소말리아 테레리스트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테러리스트들은 학생들에게 총을 들이대며 기독교인 인가 모슬렘 인가를 묻고

기독교인이라고 대답한 학생들을 총살했다고 한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며, 유가족들에게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의 따뜻한 위로가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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