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5 - Thursday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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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되어 있는 영묘(Mausoleum)가 있다. 방문객의 대부분은 베트남 사람들이었으나
외국인들도 많았고 더러는 제단 앞에서 묵념을 하며 참배를 했다.

       호지민 영묘를 지나 왼쪽에 조그만 연못이 있고 건너편에 고 호지민 주석이 살았던
집이 보존되어 있다. 그 집에서 업무를 처리하며 생활을 했다. 원래 전기공이 살던
집으로 평범한 주택이었다. 침실과 집무실 뿐이고 화장실이나 식당도 없으며 창문이 크고
넓어 바람이 잘 통했다. 아래 층에는 그가 생전에 타고 다녔던 조그만 승용차가 낡은 채로
서 있었다.

호지민은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그는 가족이나 친척의 접근도 금했다.  주석으로

재직중 누나를 한번 만난

것 외에는 형이나 가족을

만나지 않았다. 개인의

감정이나       사욕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기 때문이었다.

식사도 검소하게 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여 식탁에 놓는

반찬은 3 가지로

제한하며  절제하고

검소하게 살았다.

       호지민은 79 세로
세상을 떠났다. 임종이
가까이 오자 본인의 시신을 화장하여 베트남 북 중부 남부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했다.
그러나 베트남 국민은 그의 시신을 미이라로 처리하여 유리관에 두고 영모에 안장했다.

       호지민은 미래를 준비하는 지도자였다. 미국과의 오랜 전쟁의 와중에서도 7 만명의
학생들을 불란서에 유학시켜 미래의 지도자로 준비를 시켰다.

베트남은 자연 조건이 뛰어나다. 기후가 온후하여 1 년 3 모작을 거두어 식량문제를

해결하며  국민들이 학력이 높고 부지런하고 인건비도 저렴하여 한국 기업들도 많이

들어가 있다. 삼성의 최대 핸드폰 공장도 하노이 부근에 있다. 지난 10 년 동안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 지난해 베트남과 미국의 무역 규모가 350 억불에 달했다.

동남아 국가로는 미국의 최대 무역국가로 부상이 되었다.

       미국의 동아시아 세력확장과 중국 견제에 있어 베트남은 전략적 요충지이며 두 나라는
공동 해군 훈련을 비롯한 무기개발도 계획 중이다. 이번 모임에서 베트남의 값싼 노동력
과 인권문제도 언급이 되었다. 미국과 베트남 수교 20 년을 맞이하여 두 나라의 관계가
더욱 견고해 지고 큰 발전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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