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9 - Thursday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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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일을 털어 놓아야겠습니다. 당신이 유대인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러시아 전방에서
부상을 입고 돌아왔습니다 “.
비젠탈이 세번이나 손을 뿌리치고 나오려고 할 때마다 장교는 그의 팔을 붙들며,
자신이 우크라이나에서 마지막으로 겪은 일을 꼭 들어 달라고 애원했다. 그의 부대는
드니예프로페트로부스크 시내에서 위장 폭탄을 잘못 밟아 30 명의 병사를 잃었다. 이에
대한 복수로 나치는 유대인 300 명을 끌어 모아 삼층 짜리 집에 넣은뒤 석유를 끼얹고 그
곳에 수류탄을 던졌다. 칼과 그의 부하들은 탈출하는 사람을 총으로 쏘기 위하여 집
주위를 포위했다. 칼은 그 순간을 회상하며 말을 이었다.
“어느 아빠가 어린아이를 안고 있었는데 옷에는 불이 붙었습니다. 그 아빠는 아이의
눈을 가린 채 뛰어 내렸습니다. 아이 엄마도 같이 뛰어 내렸습니다. 다른 창문으로
불붙은 사람들이 떨어져 내렸습니다. 우리는 쏘았습니다……….오 하나님. ”
독일 장교는 말을 계속했다. “나는 죄인으로 여기 남아있습니다. 죽음을 기다리며
유대인 한 사람 한테 모든 걸 다 털어놓고 용서를 빌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모릅니다. 당신께 너무 심한 부탁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당신의 답변이 없이는
편히 죽을 수 없습니다”.
비젠탈은 침대에 누워 붕대에 쌓인채로 죽어가고 있는 그를 보며 마침내 아무
말도하지 않고 방을 나왔다. 독일군 칼은 유대인의 용서를 받지 못하고 죽었다.
비젠탈은 미군의 도움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해방을 맞았다.
비젠탈에게 그 병실의 장면이 유령처럼 쫒아 다녔다. 그는 그날의 기억을 떨쳐 버릴
수 있을까 하고 장교의 어머니에게도 찾아갔다. 후에는 유명한 기독교 신학자들과
랍비들도 찾아가 질문을 했다. “내가 그때 독일 병사에게 아무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잘
한 일이냐?”
대부분의 사람들은 용서를 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다고 했다. 반대로 용서의
권한이 피해자에게 있음으로 제 3 자가 용서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하기도했다. 더러는
대답을 회피했다.
미움은 보복이 되고 보복은
폭력이 된다. 악이 성행하는 시대에
용서는 힘없고 부조리하고
비합법적이며 불공평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용서는 보복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뿐 아니라 정의와 평등을 이루리라
믿는다.
찰스톤 교회의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이 보여준 용서와 사랑은
위대하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희망이요 위로와 약속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