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3 - Thursday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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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쿠바에 혁명이 일어나자 헤밍웨이는 하바나를 떠나야 했다. 수많은 책도
가구도 집도 하바나의 작열하는 태양도 상큼한 바다 내음도 카리비안의 육감적인 낭만도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등 모두를 버려둔 채로.
그는 전쟁의 공포와 참혹함도 경험했다. 1 차 2 차 세계 대전 그리고 스페인
내전에도 참전했다. 적의 박격포 포탄의 파편이 다리에 밖혀 부상을 당하고 여러번 수술을
받았다. 아프리카 여행 때 두번의 비행기 사고를 당했고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통에
시달렸다. 결혼 생활도 평탄치 못하여 4 번 결혼을 했다.
그가 쓴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은 대형의 녹치새(Marlin 1500 파운드)를 잡아
배에 달고 귀항한다. 상어 떼들이 녹치새에 달려 들어 살을 뜯어 낸다. 노인은 노나
막대기로 상어떼를 내려치며 물리치려 사력을 다해 싸운다. 배가 항구에 가까이 올 때
녹치새는 앙상한 뼈로 남는다.
노인은 피로에 지치고 허무감에 빠진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It is silly
not to hope. Besides I believe it is a sin. 희망을 잃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더욱이 희망을 잃는 것은 죄악이다.”
노인의 고백처럼 헤밍웨이는 어떤 형편에서도 좌절하지 않는다. 현재에 충실하며,
고통 속에서 인내를, 삶의 허무에서 의미를, 세상의 참혹함 속에서 희망을 추구했다.
‘희망을 포기하는 것은 죄’ 인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한다. Key West(후로리다 주)에
헤밍웨이가 1930 년대에 살던 집이
있는데 기념관이 되었다. 기념관의
여러 벽에 물고기의 그림들과
녹치새를 낚아 올리며 환하게 웃는
헤밍웨이의 사진이 걸려 있다.
기념관 정원에는 수십 마리의
고양들이 살고 있다. 안내원의
말에 의하면 헤밍웨이 생존시는
100 마리 정도가 있었고, 발이
6 개인 고양이만 키웠는데, 6 이
“행운”을 상징하기 때문이었다고
그는 고양이의 발가락을 보며 하바나로 돌아갈 행운의 날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는 건강이 악화되어 기억력을 상실하고 더 이상 글도 쓸 수 없게 되었다.
우울증과 정신질환으로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미국- 쿠바의 정상화를 계기로 Jose Marti 의 고향이며 헤밍웨이가 돌아가기를
소망했던 하바나의 해변길을 나도 걸어 보고 싶다. 별빛이 쏟아지는 밤 하늘에 조국의
발전과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고 인류의 희망을 노래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