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6 - Thursday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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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했는데, 자주 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각료들 중 국무장관인 Seward 과 매우
가깝게 지냈다. 대부분 저녁시간을 함께 보내며, 정치를 논하고, 독서를 토론하고,
유모를 즐겼다. 재임기간 동안 100 회 이상 극장을 찾았다. 연극을 관람하며 슬픔과
고통을 견디고, 때로는 분노를 삮였다.
인사관리를 잘했다. 각료들의 장 단점을 잘 알았다. 단점은 잊어 버리고 장점과
특성을 발휘하도록 도왔다. 의회나 각료들이 누구를 불신임하거나 비난할 때 동조하지
않고, 함부로 해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과 대회하여 잘못된 견해나 편견을 고치게
했다.
그는 독서를 좋아했다.
국민학교를 중퇴하고 더 이상 공적인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독학으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를 했다. 순회판사
시절에도 타향에 머무를 때, 밤
늦게까지 배움에 최선을 다했다.
문학에 대한 이해도 깊었고, 특히
쉐익스피어를 좋아하고 책의 내용을
많이 암송했다.
대통령의 권위를 내세우지
아니했다. 솔직하고 서민적이었다.
가문이나 학벌로 사람을 평가하지
아니하고 사람 됨됨이를 귀하게 여겼다.
백악관을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의 사정을 들어주고, 친절을
베풀었다.
그는 낙천적이었다. 링컨의 작은 아들이 백악관 층계 난간에서 떨어져 죽었다.
부인은 상실의 실픔이 너무 커 결국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링컨은 아내를
위로하며 인간적인 슬픔을 잘 견뎠다. 정적들과 각료들 한테서 멸시도 당했다. 때로는
불안했다. 그러나 링컨은 그날로서 슬픔과 고통을 잊어버리고 다음 날은 명랑하고 평안한
마음을 유지했다.
용서의 사람이었다. 전쟁시 도망자나 병역 기피자들을 군법에 따라 사형을 집행해
군인들의 사기를 높였다. 그러나 대부분 용서하고 다시 기회를 주었다. 전쟁이 끝나고
Lee 장군을 비롯한 남군을 전범으로 처리하지 않았고, 전쟁 배상도 요구하지 않았다.
링컨의 용서로 남군은 북군에게 원한을 품지 않도록 이끌었다.
그뿐 아니라 링컨은 말을 신중히 했고, 연설할 때는 헌법 정신에 기초한 사람의
감정에 호소하여 청중들로 부터 공감을 이끌어냈다. 기회가 주어질 때는 최선을 다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
링컨이 가장 훌륭한 지도자로 존경을 받는 것은 그의 인간적인 따뜻한 성품과 겸손
때문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