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2 - Thursday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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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주전자와 컾을 그린후 보여 드렸더니 “GOOD” 이라고 하신다. 열심히 색을
칠하다 보니, 2 시간 40 분이 벌써 다 됐다. 마음도 놓이고 성취감도 생겼다. 다시 그림을
시작하기를 잘했구나 싶다.
다른 여성 분들은 이미 여러해 그림을 그린 분들이라 노련하다. 변호사 출신 남자는
그림이 처음인지 시간 내내 손가락을 입에 물기도 하고 씩씩 거리는데 완성도 하지 못했다.
변호사 일도 어렵겠지만 그림 그리는 것도 만만치 않은 듯 하다. 하여튼 내가 제일 못하는
것 같지 않아 마음이 놓였다.
네번째 시간에 들풀을 그렸다. 나도 들판에 바람에 나부끼는 여러 들풀을 그려
선생님에게 보여 드렸다. 내 그림을 보시더니, 고개를 저으시며 “이것은 들풀이 아니라
lollipop 같다”,고 하시며, 부드러운 곡선을 이용하라고 하셨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하는데…
매주 그림의 주제가 다르다. 정물, 프랑스의 전원 주택, 들풀, 버몬트 소, 말,
도시의 모습, 창에서 바라본 전원, 여름 바닷가, 등대 등등.
내가 그림을 그려야
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윈스톤
처칠 경에 관한 글(월간조선
2007)을 읽은 후였다.
처칠의 비서가 쓴 글인데,
처칠이 영국 수상으로 2 차
대전을 치를 때 고통스러워
감정의 굴곡이 너무 심했다고
한다. 독일의 공습으로 런던
시내가 불바다가 되고, 많은
국민이 살상을 당했다. 전시
상황이 너무 절망적이어서
처칠은 우울증에 빠졌다. 때로는 문을 걸어 잠그고 사무기를 집어 던지며 엉엉 울기도
했다. 전세가 역전이 되고 처칠은 승리하여 영웅이 되었다. 평화의 시대가 되자
국민들은 또 처칠을 버렸다. 처칠은 실망도 했다. 그러나 그는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며
시련을 이겼다. 2 차 세계대전사를 써서 노벨문학상도 수상하고 정치에 다시 복귀하기도
했다. 그의 비서는 처칠을 위대하게 한 것은 그가 시련 속에서 그림을 그리며 자신을 잃지
않은데 있다고 했다.
나도 그림을 그릴 때 집중하게 되고 마음이 고요하고 평안해 진다.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힘들지도 않아 취미생할로는 안성맞춤이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취미생활을
하게 되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