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3 - Thursday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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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골들이 휘어진 채로 걸려 있어 뜨거운 불길을 회상케 했다. 전시물 중에는 불에탄
응급차와 소방차들을 비롯하여 희생자들의 셀폰 가방 옷 구두 운동화 모자 지갑 가족사진
여권 시계 안경 노트 회의록 등이 불에 그을리고 찢어진채 열람이 되었다.

       벽 한쪽에 Survivors’ staircase(생존자 계단) 이 있는데, 그당시 이 계단을 통해
탈출한 사람들은 살아남았다. 이곳에 생존자의 증언이 기록 보관되었다. 불길에 휩싸인
빌딩을 탈출하여 층계를 내려오던 여성이 계단을 오르는 소방관 아저씨에게 “아저씨 지금
올라가야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라고 울먹였다. 탈진한 소방관 아저씨는 “그래도
올라가야지요. 그것이 나의 일(duty)인데요.” 라고 했다. 그 용감한 소방관도 건물이
무너질 때 목숨을 잃었다.

방 가운데 넓고 긴 테이블에는 희생자들의 사진과 이력이 소개되어 있다. 사람의

얼굴을 누르면 희생자의 국적 생존기간 그리고 경력이 소개 되어있다. 희생자들 중에는

한국인 성을 가진 이름들도 볼 수 있었다. 특히 한국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승진하여

2 년 전에 뉴욕으로 가족과 함께 파견을 나왔던 분도 희생자 명단에 있었다. 한인 사회에

잘 알려졌던 김 앤드류 군의 이름도 볼 수 있었다. 그는 교회 청년회에서 유능한 리더로

활동했었다고 소개되었다.  알마전 그의 부모님이 아들을 추모하며 뉴저지의

Overpeck 공원에 있는 테니스 코트를 수리하여 아들의 이름으로 기증했다.

       뮤지엄 안쪽에는 9/11 테러 당시의 생존자들의 증언을 벽에 게시했다. 또한 당시의
상황을 중계했던 텔레비죤의 뉴스가 재방송되었다. 절박한 순간에 불타는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 구조를 기다리는 이들의 절규, 하얀재를 뒤집어 쓴채 층계를 타고
건물을 탈출하는이들, 무거운 장비를 둘러맨채 기진맥진해 있는 경찰 및 소방관들,
처참한 광경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구르며 탄식하는 길거리의 사람들, 실종자를 찾는
가족들의 불안 공포들이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다시는 이런 참혹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진정한 인류의 평화가 있기를 간절히 간구했다.

       박물관 출구 벽에 쓰인 “NO DAY SHALL ERASE YOU FROM THE MEMORY OF
TIME.” 를 대할 때 마음이 숙연해졌다. 누가 그날의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슬픔을 잊을
수 있겠는가? 지금도 나는 9/11 기념공원 자리를 멀리서 지날 때도 그날의 슬픈 기억으로

                                                                        가슴을 쓸어내린다.

               올해도                           천재지변과

               테러등으로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이 많다.                      살아있는

               사람들도 테러의 위협으로 긴장

               속에서 추수감사절을 맞는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감사절 식탁을

               대하는 가족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고 위로가 넘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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